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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삼청교육대나 납북귀환어부 같은 말이 교과서 속 단어로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2026년 8월 7일, 국가폭력 피해자 70여 명이 청와대에 초청돼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사과를 받는 장면을 접하고 나서야 그 단어들 뒤에 실제 삶이 있었다는 걸 비로소 실감했습니다. "이제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한 어르신의 말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과거사 청산,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했나
제가 처음 국가폭력 피해 사건들을 제대로 찾아본 건 다큐멘터리 한 편 때문이었습니다. 17세 소년이 오징어잡이 배를 탔다가 납북됐고, 1년 만에 돌아왔더니 오히려 국가가 그를 간첩 의심 대상으로 찍어 평생 감시하고 고문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건 분노라기보다는 깊은 당혹감이었습니다. 국가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너무 낯설었거든요.
이런 사건들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가 바로 진실화해위원회(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입니다. 여기서 진실화해위원회란, 권위주의 시절 국가가 저지른 인권침해와 폭력 사건의 진실을 공식적으로 규명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독립 국가기구를 뜻합니다. 1기와 2기 활동을 통해 상당수 사건의 진실은 이미 규명됐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진실이 밝혀졌다는 건 첫 번째 계단에 불과했습니다. 실질적인 명예 회복 조치와 배상이 뒤따르지 않으면서, 많은 피해자들이 공식 인정은 받았어도 삶은 달라지지 않는 이상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경우가 역사에서 반복될 때마다 피해자들은 이중으로 지쳐가게 됩니다. 국가에 의해 한 번, 국가의 무관심에 의해 또 한 번.
-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 사건: 군사정권이 운동권 학생을 강제 징집해 전향을 강요한 사건
- 삼청교육대 사건: 1980년 계엄 하에 영장 없이 수천 명을 군부대로 끌고 가 가혹행위를 가한 사건
- 납북귀환어부 사건: 북한에 끌려갔다 돌아온 어부들을 국가가 오히려 간첩으로 의심해 고문·감시한 사건
- 서산개척단 사건·사북 사건·전교조 해직 사건 등 다수의 개별 국가폭력 사건들
흰 장미 한 송이와 진실화해위 3기 출범의 의미
이번 오찬 간담회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연설이 아니라 흰 장미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오찬 시작 전 피해자 한 분 한 분에게 흰 장미 한 송이씩을 직접 건넸다는 대목에서 잠시 멈추게 됐습니다. 흰 장미는 순수, 평화, 존중, 새로운 출발을 상징합니다. 꽃 한 송이가 무슨 의미냐고 할 수도 있지만, 수십 년간 국가로부터 외면받아온 분들에게 최고 통치권자가 직접 다가가 꽃을 건네는 행위 자체가 달랐습니다.
제주 4·3이나 5·18민주화운동처럼 이미 사회적으로 충분히 조명된 사건들과 달리, 이번에 초청된 분들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 소외돼 있던 개별 국가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이처럼 개별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직접 초청해 위로와 사과를 전한 건 역대 처음이라고 청와대 측은 밝혔습니다(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제가 직접 이 소식을 접하면서 느낀 건, 이 자리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수십 년의 기다림에 대한 국가의 응답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또한 이날은 제3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마련됐습니다. 3기 진실화해위원회란, 앞선 1·2기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사건들을 계속해서 규명하고 피해자 명예 회복 조치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새롭게 구성된 기구입니다. 쉽게 말해 진실 규명의 바통을 이어받는 역할입니다. 송상교 위원장이 향후 활동 방향을 직접 설명하는 자리도 이날 함께 마련됐습니다.
명예 회복의 진짜 완성은 특별법과 제도적 뒷받침
이번 간담회에서 피해자들이 쏟아낸 건의 사항을 읽으면서, 저는 오히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감동적인 사과 장면 뒤에 남겨진 현실적인 문제들, 즉 배상과 보상의 절차가 너무 험난하다는 호소였습니다.
현재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받으려면 스스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여기서 민사소송이란, 개인이 법원에 직접 소장을 제출하고 증거를 모아 국가와 법정에서 다투는 절차를 뜻합니다. 이미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국가폭력 사실이 공식 인정된 분들조차 별도로 소송을 해야 한다는 건,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진실이 인정된 이후에도 피해자가 다시 싸워야 한다는 구조 자체가 2차 가해와 다름없습니다.
피해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을 강하게 촉구했습니다. 특별법이란 일반 법률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특정 사안에 대해 국회가 별도로 만드는 법률로, 이 경우엔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소송 없이도 신속하게 배상·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가가 이미 잘못을 인정했다면, 피해자가 다시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지극히 합당합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그 외에도 양창욱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상규명위 상임위원장은 옛 보안사 건물에 국가폭력역사관 조성을 요청했고, 이총각 동일방직노조 탄압 사건 피해자는 여성과 청년 노동자 보호를 촉구했습니다. 이 건의들은 단발성 위로 행사가 아닌, 지속 가능한 명예 회복 체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줬습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느낀 건, 이 분들이 원하는 건 동정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제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진실화해위원회가 뭔가요? 처음 들어봤어요.
A.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줄임말로,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가가 저지른 인권침해와 폭력 사건의 진실을 공식적으로 조사·규명하는 독립 기구입니다. 1기(2005~2010년), 2기(2020~2024년)에 이어 2026년 3기가 출범했습니다. 이 기구의 조사 결과가 나와야 피해자들이 공식적인 명예 회복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첫 발판이 마련됩니다.
Q. 삼청교육대가 정확히 어떤 사건이에요?
A. 1980년 신군부가 계엄령 아래 사회 정화를 명목으로 영장도 없이 수천 명을 군부대로 강제 연행한 사건입니다. 박관식 씨처럼 중학생이었던 분들도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 구타와 고문을 당했고, 이후 사회로 돌아와서도 낙인이 찍혀 수십 년을 고통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저도 이 사건을 처음 제대로 알게 됐을 때 한동안 멍했습니다.
Q. 이번 사과가 이전 정부의 과거사 사과와 다른 점이 뭔가요?
A. 가장 큰 차이는 대상입니다. 이전의 정부 사과는 주로 제주 4·3이나 5·18민주화운동처럼 이미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사건의 기념식 자리에서 이뤄졌습니다. 이번엔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개별 국가폭력 사건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직접 초청해 대통령이 한 분 한 분에게 흰 장미를 건네고 오찬을 함께하며 사연을 들었습니다. 개별 피해자들을 이런 방식으로 대면해 사과한 건 역대 처음입니다.
Q. 피해자들이 왜 소송을 직접 해야 하나요? 국가가 인정했으면 그냥 배상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A.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현재 법 구조상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은 사실 인정이지 자동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결정이 아닙니다. 피해자가 배상을 실제로 받으려면 그 결정을 근거 삼아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고령의 피해자들이 변호사를 구하고 소장을 작성해 국가를 상대로 법정 싸움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번 간담회에서 강하게 나온 것입니다.
결론
납북귀환어부 사건 피해자 신평옥 씨의 말이 제 머릿속에 오래 남습니다. "지나간 세월을 다시 돌려받을 수는 없지만, 사과 한마디로 이제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묵직하게 느껴진 건, 그분이 원한 게 돈이나 특혜가 아니라 그저 국가가 잘못을 인정해주는 한마디였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제가 이번 일을 보면서 정리된 생각은 이렇습니다. 사과는 시작이고, 제도가 완성입니다. 선언적 사과에 진심이 담겼다 해도 그것이 특별법 제정, 배·보상 절차 간소화, 국가폭력역사관 건립, 관련 기록물 보존 같은 실질적 조치로 이어지지 않으면 또 다른 소외가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이번이 진짜 첫걸음이 되려면, 다음 걸음이 빠르게 뒤따라야 합니다. 그 과정을 계속 지켜볼 생각입니다.